뜻밖의 계절

갑자기 불어온 가을 바람에 나는 쫓겨 다녔다. 아무리 숨으려 해도 그는 놀랄만큼 나를 빨리 찾아내었다. 막상 그를 맞닥들여 본다해도 딱히 할 말이 있거나, 멱살잡고 흥분할만큼 서로에게 유감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머리카락을 흩을 수도 없었던 가을 바람이 나 조차도 찾지 못하게 묻어놓았던 그 자리를, 묘비만 남겨진 그리움의 자리를 잘도 찾아 내었다. 나는 곧 눈물을 흘렸다.Continue reading “뜻밖의 계절”

흔적 u

곧 돌아온다던 그이의 발자국 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는다. 밤새 왔다간 흔적도 이제는 찾아지지 않는다. 서글피 울어도 위로는 없다, 희망도 없다. 슬픔도 없다, 아픔도 없을 것이고, 그리움은 더더욱 필요없는 것이 되었다. 넌 갔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아쉬움도 없으니, 그냥 훨훨 날아가라. 그저 더이상 바랄 수 없는 그곳에서 너만은 조금, 후회 하기를.. 내 사랑은 끝났지만, 너만은Continue reading “흔적 u”

숨쉬는 꽃

미칠 것만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더라도 내 자신에게 편지 쓰기를 잊으면 안된다. 물오른 두 가슴에 저벅이는 발소리가 다가오더라도 엎드려 부푼 숨소리에 꽃을 피우고 싶은 한이 있더라도 촛대하나, 심지하나, 불꽃 하나에 타는 자신 하나를 잊는다면 그리움의 참맛을 100% 즐길 수 없음이다. 날기를 쉬지말고, 도태되고 굶주려도 거만함을 잃지 말기로하자 학이 되어 날수 있을 때까지 내 자신을 태우며Continue reading “숨쉬는 꽃”

다이어리

빈틈없이 기록하나 아무 것도 기억하지 않는다 갈수 있는 곳은 오직 화살표 방향 스스로 갈수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승인 받지 않고 가는 길은 허공에 떠돌고, 아무 것도 찾아지지 않는 밤 형체는 거울 속을 거닐고 있다. 모두를 사랑하고 또 모두를 증오하는 회오리는 밤마다 나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거꾸로 벽에 세워 놓는다. 기억은 그 장소에 이미 흘려 버렸고Continue reading “다이어리”

애처로운 박애주의자

그대는 안정된 계급과 좋은 가문이라는 갑옷을 걸치지 못한 채로 태어났습니다 보호해 줄 외투가 되어줄 배우자는 일찍 저 세상으로 가버렸구요 속옷 하나 걸친 채 어린 두 딸을 이끌고 여기까지 살아 오시느라 애쓰셨어요 ‘나’ 라는 존재, 내 감정따위는 생각할 겨를 없이 살아서, 지금 자신이 아픈지 슬픈지 모르고 계셨어요 이유없는 매를 맞고도 자신의 잘못인듯 머리를 조아렸어요 상처가 나서Continue reading “애처로운 박애주의자”

극한직업

너와 나 사이에는 어느덧 틈이 비집고 들어와 쓸쓸함 만이 극에 달해 내 뺨을 후려치며 달려가고 있다. 시원한듯 당연하게 고통은 너무도 당당하게 나를 감싸고 있다. 난 오랜 채무를 이행하듯 감내했다. 살아 있음이 슬펐으나, 오히려 감사했다. 그러다가 그의 날카로운 판정을 받아들게 되면 진실이, 사실이, 나의 어리석음이, 그 빌어먹을 관용이 가시보다 진하고, 깊숙이 내 몸을 파고 드는 것을Continue reading “극한직업”